Saturday, February 27, 2010

“선수는 가장 힘든 순간을 꼽기 어려워요. 힘든 기억이 가장 많아서. 우승을 할 때 물론 기쁘지만 그 순간은 잠시 그때뿐이에요”

올림픽 우승 직후 김연아의 인터뷰 중

Tuesday, February 23, 2010

DC가 꿈에 나왔다. 한때 따로 만나 맥주를 마신적도 있는 사이지만 그 사람의 가식적인 웃음과 부담스러운 호의에 불편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내가 그 사람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사람은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었는지 아마 눈치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가끔 가까운 사람들 여러 명이 모인 자리에서 의식적으로 그 사람의 눈을 피한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그 사람을 안 좋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은 지나친 속물이긴 하지만 그걸 감안하고 봐도 충분히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꿈에 나온 것은 DC의 얼굴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어슴프레 잠이 깨어 현실로 넘어 오는 과정에서 생각난 것은 의식의 작용이지 꿈이 아닌 것이다. 커다란 가슴과 함께 살의 텍스쳐가 다 보일 정도로 과도하게 붙는 청바지를 입은 그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 것은 꿈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다리가 뚱뚱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슴에 비해 몹시 날씬했다. 그리고 내가 그것에 대해 생각한 것은 꿈에서가 아닌 꿈에서 깨어난 후였다. 즉, 무의식이 아닌 의식에서였다.

Sunday, February 21, 2010

인간에게 감정이라는 것이 (물리적이거나 화학적인 상호작용처럼) 반응하는 것인지 (지각의 약한 부분을 뚫고 올라오는 마그마처럼) 어떤 거대한 흐름에 의해 분출하는 것인지 (현대 여성들이 생각하는 체중에 대한 관념처럼) 조절하는 것인지를 특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속한 사회에서 교육받은 바에 의하면 결국 마지막에 가서 화는 조금 누그러뜨리는 것이 덕이며 슬퍼도 눈물을 최대한 참는 것이 덕이며 애인이 자신에게 거짓말하고 다른 남자를 만나도 허용해주는 것이 쿨한 것이며 구걸하는 장님은 장님이 아닐 것이라 믿음으로써 연민의 감정을 자제하고 길거리에 버려진 애완동물은 어떻게든 잘 살것이라는 막연한 불확실성에 동정을 희석시키는 것임이 대체적으로 맞는 해석이었다.
하지만 내가 꿈꾸는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다.
단지 아닌게 아니고 아닌 것이 확실하다.
사회적 규약에 의해 친구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 몇몇 인간들이 있다. 그들에게 받은 것은 우정이 아닌 배신과 모욕이었다. 지금껏 내가 교육받은, 그리고 성공적으로 그것을 터득한, 감정에 대한 사회적 규약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것을 지금처럼 모르는 척 지나치지 않았을 것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다소간의 공격적인 상호작용이 있었을 것임에 분명하고, 그것은 어쩌면 그 감정을 보다 극단적인 것으로 몰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냥 조금 비겁하게 끓는 마음을 억누르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고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그들 역시 그들이 속한 사회의 영향을 받아 내면의 감정 중 일부만을 나에게 표현했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따지고 보면 그들이 나를 때리거나 날카로운 도구로 내 신체를 해하지 않은 것은 나와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이 사회의 감정 조절 교육 효과가 발현한 탓인지도 모른다.
동시에 그들이 나와 매우 다르다는 것도 인정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상대적으로 우월한 나의 학습능력을 감안할 때, 그들이 나와 같은 것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잘 학습하지 못해 나에게 불쾌한 감정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하면 지나간 일은 이제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내려온다.
여기서 나는 스스로의 행동, 판단, 감정 기준에 dissonance를 느낀다. 지금껏 내가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을 내렸을 때 중요한 기준이 되었던 것은 일단 해보고 후회하던 말던 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상대방이 본인을 humiliate하고 mocking하고 despise한다거나 반대로 상대방이 본인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을 표현할 때 그 표현이 전제하는 사회적 약속들을 일단 받아들이고 나서 그 뒤에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 이론적인 나의 행동양식이지만, 그것이 감정과 결부될때에는 그렇지 않다. 지금껏 받은 나의 기묘한 교육에 의해 다른 것들과 일관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원칙을 대체하고자 스스로 만든 행동 양식은 상호주의이다. 하지만 그 상호작용의 양상은 나만의 방식에 의존한다. 어떤 explicit한 자극에도 나는 implicit하게 반응하기로 한다.
만일 나의 반응이 매우 explicit하다면 그것은 그 수준에서의 implicit한 반응이라 간주하면 될 것이다.
읏읏 바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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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February 20, 2010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가 암묵적인 약속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약속은 이방인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모두가 짜고 낯선 이를 속이는 것과 다를게 무엇이란 말인가
아방가르드의 최첨단을 달리는 파란 눈의 외국인이 서울에 와서 처음 만난 남대문 시장 상인과 친구가 되어 밤마다 막걸리를 고주망태가 되도록 마시고 길바닥에 토하고 자기가 토한 위에 뒹구르고 그걸 동아시아적 아방가르드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건 정말 불공평하다.
사람은 어디서나 자신이 속하고 싶은 사회의 틈을 찾아 비집고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그것들에 모두 이름표를 달아야된다는 것이 아니다
한 이방인이 정처없이 헤매는 것 같이 보일 때에는 그가 있으면 좋을만한 곳으로 보내주어야 한다 아니면 적어도 여기는 그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최대한 일찍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서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낯선 곳에서는.
많은 경험이 능숙함을 만든다
마찬가지로 많은 경험이 익숙함을 만든다
많은 경험은 지루함을 만든다
많은 경험은 진부함을 만든다
어쩌면 나는 세계에서 가장 shy보이일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 특정한 것을 많이 경험하고도 shy보이이기 때문에 능숙하지 못하다
마찬가지로 나는 가끔 특정한 것을 많이 경험하고도 shy보이이기 때문에 익숙하지 못하다
그것은 쿨한 남자들과 쿨한 남자들에게 자신이 매력적으로 보이기를 원하는 여자들이 있는 곳에서 증폭된다.
같은 브랜드의 같은 셔츠를 입고서도 같은 표정을 짓기는 힘들다
shy보이이 기 때문에
그렇다고 내가 특별히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만일 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한다면 동양인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도 해본다
갈색이 아니라 빨간색이라면 어떨까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