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에서 열린 제 60회 ICA annual conference 발표를 마치고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것은 6월 26일의 늦은 밤이었다. 1시간의 시차를 고려할 때 서울에 도착하면 아침 6시 정도가 되는 일정이었다.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 시작한 한국과 우루과이의 월드컵 16강전, 경기 초반 너무나도 쉽게 1점을 실점하는 것을 확인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이륙하기 전 안내방송에서 한국인 기장이 이청용이 만회골을 넣어 1:1 동점 상황이 되었다고 알려주었다.
그 이후, 도착하기 전까지 예닐곱 시간 동안의 꿈은 대부분 한국전 경기 결과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것이었던 것 같다. 기장은 더 이상 경기 결과를 업데이트 하지 않았고 그건 예상할 수 있을만큼 불길했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비행기에 같이 타고 온 동료들이 한국이 2:1로 졌다고 알려주었다. 핸드폰을 켜자 도착한 문자는 아빠가 보낸 것으로 한국전 패배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그깟 축구경기 하나일뿐인데 왠지 내 미래에 대한 총체적인 전망을 반영하는 듯 생각되어 유쾌하지 않은 기분.
집으로 가려 공항버스를 기다리는데 어디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희연이의 동생 이지연이었다. 그 옆의 작은 실루엣은 이희연. 쇼핑몰 촬영차 보라카이를 다녀왔다며 손에 무언가를 잔뜩 들고 온 그녀. 그렇게 약 1년만의 인사를 건네고 그녀들이 탄 버스 안을 보았다. 이지연 옆에는 한 남자가 타고 있었고, 희연이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집에 도착해서 짐을 꾸리다가 인터넷에서 효도르의 첫 번째 패배 소식을 전했다. 세상이 무언가 계속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기분. 일단 부산으로 가야겠기에 조금 잠을 청했다. 1시간 정도만 눈을 붙이고 바로 부산으로 가려고 했지만 계속된 여행에 피로가 누적되어서 그런지 약 40번에 달하는 모닝콜 중 어떤 것도 듣지 못하고 잠에 빠져 있다가 깨어난 시간은 오후 2시 경. 오늘이 아니면 여자친구를 다시 볼 수 없기에 부랴부랴 짐을 챙겨 부산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3시 20분. 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향하는 도중에 동생이 아기를 출산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어쩌면 오늘은 그렇게도 비현실적인지. 노포동 터미널에 도착하고, 다시 택시를 잡아 양산 병원 기숙사 앞에서 그녀를 만났다. 보라색 그라데이션 무늬의 티셔츠에 보라색 귀고리를 하고 검은 스트라이프가 있는 흰색 카디건에 타이트한 청바지. 별다를 것 없는 그 모습이 너무나 예뻤지. 언제나처럼.
우리는 진작 수소문해서 알아둔 샤브샤브 식당에 갔다. 그 식당은 원하는만큼 먹을 수 있는 부페 같은 곳이었다. 당연히 우리는 배가 터질 것 같을 때까지 먹었고 행복했다. 우리는 시내를 의미 없이 조금 걸어다니다가 예전에 몇 번 갔던 양산 시내의 커피 숍에서 팥빙수를 시켜 먹었다. 벽 쪽 자리에 나란히 앉아 서로의 손을 잡고 장난치는 순간이 매우 특별한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 10시 반 정도가 되었고, 나는 그녀를 기숙사 앞까지 택시로 바래다주고, 포옹과 짧은 입맞춤과 손짓으로 작별 인사를 나누고, 같은 택시를 타고 부산 터미널로 향했다.
휴가철이어서 그런지 버스는 죄다 매진이었고 나는 11시부터 12시 20분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하니 새벽 4시.
아르헨티나와 멕시코 경기를 조금 보다가 5시경에 여자친구를 전화로 깨워주고 조금 잠을 청한 후 부리나케 미국으로 갈 짐을 챙기고 은행일을 보고 치과에 가서 스케일링을 받았다.
2010년의 여름방학.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걱정 하지 말자. 겨우 10시간 떨어져 있을 뿐이니까.